동물의 자리

🔖 “저희는 동물을 사육하는 분들에 비해 동물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, 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분들은 소를 키우는 분들인 거예요. 갈등 구도로만보면 길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요. 처음에는 보금자리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표만 생각했다면, 지금은 살림을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지, 그러니까 동물살림과 마을살림, 지구살림이 같이 연결되는 살림을 보여주고 싶고, 또 축산업 종사자들과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까지 생각하게 됐어요.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사랑이고요. 어떻게 보면 꽃풀소들이 저희한테 선물을 준 것 같아요.”

🔖 사람에게 길들여지고, 온순하고, 무해하고, 더 나아가 사람을 닮아가는 동물이 늘어날수록 인간과 완전히 별개의 삶을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위치를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다. 예컨대 어떤 야생동물은 그가 살아가는 서식지가 살 만한 곳인지를 말해주는 '깃대종'이 된다.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동물들이 '동물답게'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. 그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, 앞으로도 그렇게 '인간과 닮지 않은'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생명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대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. 다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.

🔖 정말, 허밍의 수염이 내 뺨에 닿는 게 느껴졌고 허밍의 커다란 눈동자 안에 내가 보였다. 나의 눈이 허밍의 눈동자에 또렷하게 비치고, 허밍의 목을 쓰다듬을 때 천천히 규칙적으로 뛰는 맥박이 손바닥에 닿는다. 허밍과 눈을 마주치고 그의 뺨을 쓰다듬은 30분, 시간이 또 한 번 멈춘다. 이 마주침이 내가 살아온 시간, 내 소비 습관부터 오래 묵은 편견들을 무너뜨릴 거라는 걸 알았다. 이 순간, 그러니까 다른 존재와 마주하면서 내가 살던 세계가 무너지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이 좋았다. 개, 고양이와 한집에 살게 됐을 때,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돼지를 봤을 때, 바퀴벌레를 보고 벌레가 아니라 작은 동물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랬다. 아마 나는 개에게 '말 육포'라 적힌 간식을 절대 주지 못할 것이며, '마유'가 들어간 화장품 광고를 볼 때마다 허밍과 마주한 순간을 떠올릴 게 분명했다.